Page 47 - 고경 - 2019년 2월호 Vol.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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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있다. 이에 경청이 ‘멍청한 놈’이라고 되레 혼을 내는 장면이다. 채 무르
익지도 않은 수행자가 줄탁을 거론하다 크게 한 방 얻어맞은 꼴이 되었다.
경청도부(鏡淸道怤, 868~937)선사는 6세에 동진출가하여 훗날 설봉
의존 선사의 법맥을 이었다. 당대에 선풍을 휘날린 운문문언(雲門文偃,
864~949), 장경혜릉(長慶慧稜, 854~932), 보복종전(保福從展, ?~928) 등과 사
형사제 간이다. 설봉선사에게 인가를 받은 경청은 월주(越州, 오늘의 절강성
소흥)에 경청사를 세우고 후학들을 제접提接했다. 경청사에서 선사는 수많
은 학자와 논쟁을 벌이곤 했는데 그의 선지禪旨와 선기禪機가 상대방을 대
부분 압도했다고 전해진다.
촌뜨기의 겁없는 도전
이런 경청선사가 자신을 깨달음으로 이끌지 못할 경우 세상의 조롱거
리가 될 것이라고 치기를 부린 젊은 학승에게 당할 리 없다. 경청선사는
‘초리한艸裏漢’이란 말로 젊은 학승의 호기를 꺾어버린다. ‘초리한’은 당·
송 시대의 속어俗語로 ‘촌뜨기’, ‘멍청이’란 뜻이다.
‘줄탁동기’가 되려면 세상에 나올 준비가 돼있어야 하고 무르익어야 한
다. 어미 또는 스승도 그 무르익음을 알아 동시에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나 경청을 상대하는 학승은 알을 깨고 나올 만큼 익지 않았
다. 선사 역시 그가 설익은 알에 불과할 뿐, 여전히 가슴에 품고 있어야만
하는 존재다. 깨달음의 경지에 가기 위해선 부단히 정진해야 하는 학인승
려일 뿐이다. 이런 학승이 선불장選佛場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면 그 책임
이 경청선사에게 있다고 엄포를 놓고 있으니 선사로선 기가 찰 일이다.
이처럼 자신의 어리석음을 모르고 천방지축 날뛰는 사람들이 적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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