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5 - 고경 - 2019년 2월호 Vol.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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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종교(大乘終敎: 『유마경』), 대승원교(大乘圓敎: 『화엄경』)가 그것이다. 천태의
오시가 경전의 설법시기를 중심으로 한 구분이라면 법장의 오교는 경전
의 내용적 깊이를 중심으로 한 분류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독자적 내용분류인가 부파적 분류인가이다. 천태의 오시교판은
팔교로 세분되고, 화엄의 오교교판은 다시 열 가지 종파적 구분인 십종으
로 세분된다. 천태의 팔교는 독자적인 내용분류에 따라 분류한 반면 화엄
의 십종판은 기존에 존재하던 여러 부파의 교설로 구분한 것이 특징이다.
셋째, 십종교판은 중도를 기준으로 교설의 깊이를 구분한 점이다. 물
론 두 교판이 모두 중도를 최고의 교설인 원교圓敎라고 설정하고 있다. 하
지만 화엄의 십종교판은 분류 기준 자체를 중도에 얼마나 충실한가에 초
점을 두고 있다. 화엄종에서는 최고 단계의 교설을 ‘화엄원교華嚴圓敎’라고
불리는 화엄경을 들고 있다. 여기서 원교의 내용이란 다름 아닌 중도사상
을 의미한다. 화엄종을 집대성한 대가들의 사상을 살펴보면 화엄원교는
쌍차쌍조雙遮雙照라는 중도를 핵심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존재의 우주적 관계성을 규명하는 법계연기法界緣起도 중도가 핵
심원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십종교판에서는 중도의 원리에 입각해서 교
설의 심천深淺을 구분하고, 중도에서 벗어난 사상은 부처님의 근본에서
벗어난 것으로 분류한다. 반대로 중도에 가깝고 충실할수록 부처님의 심
오한 가르침에 충실한 것으로 분류했다. 법장은 이와 같은 관점에서 불교
의 다양한 교설을 열 가지로 분류하여 십종으로 정리했다. 그러나 『백일
법문』에서는 원융중도를 해명하는 데는 청량징관의 설이 더 적합하다는
이유로 청량의 십종교판을 토대로 설명하고 있다. 청량은 법장의 교판을
계승하지만 몇몇 부분에서는 자신의 독자적인 견해를 바탕으로 새롭게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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