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3 - 고경 - 2019년 3월호 Vol.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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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 있고, 중생이 중생이라는 상을 떠나 있다면 부처님은 부처가 아니
며, 중생도 더 이상 중생이 아니다. 그래서 법장은 “부처님의 마음을 가진
중생[불심중생佛心衆生]이어서 설법을 듣는 자가 없기 때문이며, 중생의 마음
을 가진 부처님[중생심불衆生心佛]이어서 설법하는 자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성스러운 가르침에는 부처와 중생이라는 두 마음이 있을 수 없다[구
비이심俱非二心]. 따라서 부처는 부처의 특성이 박탈되고, 중생은 중생이라는
특성이 박탈된다. 이렇게 부처와 중생이라는 분별적 형상이 사라지면 부
처는 더 이상 부처가 아니고, 중생도 더 이상 중생이 아니다. 결국 부처와
중생이라는 차별상은 사라지고 만다. 중생이라지만 부처님의 마음[중생심
불佛心衆生]을 가진 중생이므로 굳이 다른 부처에게 법을 들을 것이 없다. 여
기서 부처에게 법을 듣는 중생이라는 차별적 위상도 사라진다.
부처라지만 중생의 마음에 있는 부처[중생심불衆生心佛]이므로 법을 설하
는 부처는 사라지며, 법을 설하는 자도 없어진다. 이처럼 중생이 중생이
아니므로 중생이 사라지고, 부처가 부처가 아니므로 부처도 사라진다. 부
처와 중생이라는 차별적 양변兩邊이 모두 사라지고, 부처와 중생이라는
외형적 특성이 모두 해체 되는 것이다.
설청전수의 가르침을 바로 이해하면 나이가 많거나 지위가 높다는 이유
만으로 함부로 꼰대 짓을 할 수 없다. 부처와 중생마저 평등한데 사소한 경
험과 지식이 차별의 이유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설청전수는 설자와
청자라는 차별적 개념을 전복하고 존재의 평등성을 드러내는 가르침이자,
차별에 사로잡힌 중생의 인식을 치유하는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다.
서재영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선의 생태철학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연
구교수, 조계종 불학연구소 선임연구원, 불교신문 논설위원 등을 거쳐 현재 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으로
있다. 저서로 『선의 생태철학』 등이 있으며, 포교 사이트 www.buruna.org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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