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5 - 고경 - 2019년 3월호 Vol.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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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은 12세기 사람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송나라 목우도牧牛圖에는 다양한
판본이 있었는데, 대체로 게송과 그림으로 구성되고, 때로는 게송 자체가
간단한 머리말(序)을 포함했다고 한다. 당시 주목된 목우도는 청거清居, 곽
암廓庵, 자득自得의 것이었고, 청거의 것은 다섯 개의 장면이고, 곽암의 것
은 열 개의 장면이고, 자득의 것은 여섯 개의 장면이었다고 한다.
곽암의 목우도를 해설하는 문헌은 『주정주양산 곽암화상 십우도송住鼎
1)
州梁山廓庵和尚十牛圖頌』 이다. ‘정주(지금의 호남성) 양산에 거주하는 곽암 화
상(승려)의 십우도 게송’이라는 의미인데, 분량은 A4용지로 5쪽 가량이다.
이 문헌에는 전체적 머리말[序], 그림을 간략히 설명하는 10개의 게송(간단
한 머리말이 앞에 위치함), 각각의 게송에 대한 석고이石皷夷 화상의 화답 게
송과 괴납련壞衲璉 화상의 화답 게송이 포함되어 있다. 곽암은 전체적인
머리말에서 청거清居의 목우도를 언급하며 그 그림이 중생의 근기를 관찰
하여 병에 맞추어 방도를 베풀었다고 칭송하였는데, 이는 곽암이 청거에
게 영향 받았음을 알려준다.
곽암의 십우도는 그에 앞서 그려진 보명의 십우도와 차이를 보이고 있
다. 차이 중의 하나는 보명은 소가 온순해지는 것을 소의 몸의 검은 색이
점차 흰색으로 변화하는 것으로 표현하였지만, 곽암의 그림에는 그런 표
현이 없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의 차이는 보명은 곽암의 제8의 인우구망
人牛俱忘 단계까지를 열 개의 그림으로 그렸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곽암
의 9) 반본환원返本還源과 10) 입전수수(入廛垂手, 시장에 들어서서 손을 드리
움)에 해당하는 그림이 보명에게는 없다. 보명에게 없던 이 두 장면을 곽
1) http://tripitaka.cbeta.org/X64n1269_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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