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8 - 고경 - 2019년 3월호 Vol.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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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없음이 항상 없음이라면 당연히 있음을 말 할 수 없다. 있음을 말함은
가유假有로써 없음이 아님을 밝히는 것이며, 없음을 빌려 ‘있음이 아님’을
분별하는 것이다. 이것은 만물은 모두 하나이나 비유非有와 비무非無라는
두 가지 칭호가 있다. (경전과 논에 나오는) 비유라는 말과 비무라는 말이 보
기에는 같지 않은 것 같으나, 중도中道의 이치를 체득한다면 다르거나 같
지 않음이 없다.
141)
[9] ①[7] 然則萬法果有其所以 不有, 不可得而有; 有其所以不無, 不可
142)
得而無. 何則? 欲言其有, 有非真生 ; 欲言其無, 事象既形. 象形不即無,
非真非實有. 然則不真空義, 顯於茲矣! 故《放光》云: “諸法假號不真, 譬如
幻化人. 非無幻化人, 幻化人非真人也.”
[9] ①[7] 그러한 즉 만법은 있음이 아닌 이유가 있기에 실제로 있다고
하지 못하고, 없음이 아닌 원인이 있기에 실제로 없다고 말하지 못한다.
왜 그런가? 그 있음을 말하고자 하나 태어남[있음]은 진정한 있음이 아니
며, 없음을 말하고자 하나 사물은 이미 형태가 있다. 모습이 있기에 없음
은 아니며, 진정한 있음이 아니기에 실제로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즉
‘참답지 않음’ 즉 공空함의 의미가 여기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그래서 『방
관반야경』은 “제법은 ‘가짜 이름’이기에 참다운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허깨비 사람 같은 것이다. 허깨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허깨비는 진정한
사람은 아니다.”라고 말씀 하셨다.
141) 소이所以는 까닭 이유라는 의미다.
142) 진생眞生은 진유眞有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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