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2 - 고경 - 2019년 3월호 Vol.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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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정도 약을 먹으면 낫는단다. 무리한 체중감량, 하루도 빼먹지 않은 폭

           음, 극심한 스트레스가 질병의 원인으로 보인다. 여하튼 삶에 특별한 미
           련은 없는데, 막상 얼마 못 가 죽을 수도 있다 하니 이게 또 마장魔障이다.

           공포와 절망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당장은 죽을병이 아니라니
           한결 차분해지긴 했다. 짐짓 초연해지기도 한다. 이승을 의미하는 사바沙

           婆 세계는 산스크리트 ‘사하Saha’에서 발음을 따왔다. 의역하면 감인토堪
           忍土. 곧 견디고 참아야 하는 땅이라는 뜻이다. 사바 위에서는 누구나 탐

           진치 삼독三毒의 번뇌를 견뎌야 하고 오온五蘊에서 비롯되는 고통을 참으
           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결국 사바세계란 본질적으로 복이 아니라 벌을

           받으러 오는 곳이다. 나무가 뭘 잘못해서 비바람에 시달리는 건 아니다.
           그냥 거기 서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철학적 직장인이다”


             윌 듀런트Will Durant가 쓴 『철학이야기』를 고2 때 읽었다. 철학과에 가

           야겠다는 막연하고 무모한 결심에 제법 영향을 준 책이다. 듀런트 사후
           30년이 지나서 『노년에 대하여』라는 유작이 출간됐다. “사람은 정점에 서

           있을 때 죽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는 구절로 시작된다. 내 인생에
           정점이 언제 올는지, 아예 안 올는지, 이미 왔었는지는 도통 모르겠다.

           어쩌면 노년조차 기대하지 못할 운명일 수 있다.
             10년 전에 낸 책의 서문에 “너무 오래 살았다는 생각. 술은 원 없이 마

           셔봤고 세상일은 전부 우습다.”고 썼었다. 지금의 병고는 그때의 젊음을
           방만하게 흘려보낸 업보이리라. 과거에는 치기 어린 마음으로 죽음을 상

           상했다면, 이제는 약간이나마 진지해진 마음으로 죽음을 사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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