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3 - 고경 - 2019년 3월호 Vol.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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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앞까지 왔던 죽음은 크게 힘을 잃었으나 그리 멀리 가지는 않았다. 이

            런저런 화병과 따돌림을 자초하면서 고집스럽게 붙들고 있던 존재론이
            다. 억지로 주어진 인생 또 다시 언젠가 강제로 빼앗기게 될 것이라면, 개

            평이라도 최대한 받아내야겠다. 내게는 글줄깨나 바득바득 써내면서 어
            설프든 강렬하든 인생의 의미에 대한 공감을 끌어내는 일이 그렇다. 일천

            한 나에게도, 육신은 유한하되 법신法身은 영원한 것이다. 쇠똥구리가 그
            저 똥 냄새나 맡자고 그토록 힘들게 똥을 굴리겠는가. 나는 철학적 직장

            인이다.
              나다니기도 싫어하고 연애와도 거리가 먼 낫살이다. 그래서인지 영화

            관에 가지 않은지 10년이 됐다. 케이블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보면
            가끔 유익한 영화가 얻어걸리기도 하는데, 근자에는 ‘루시(2014)’가 퍽 인

            상 깊었다. 보통 인간이 10%만 쓰고 죽는다는 뇌를 100% 쓸 수 있게 된
            여성의 초인적인 무용담을 줄거리로 삼았다. 작품의 결론에서 감독이 전

            하려던 교훈은 생명의 궁극적 목표는 ‘전승傳承’이라는 것이었다. 세포분
            열을 하든 암수교미를 하든, 모든 개체는 자신이 획득한 지식과 경험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려는 본능을 갖는다는 것.
              그리하여 그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덜 괴롭고 덜 방황하도록 만들어주

            고 싶어 한다는 것. 이 와중에 『조주록』을 꺼낸다. 마음 다스리는 데는 최
            강이다. 조주는 생사의 무거운 굴레를 무슨 시골의 물레방아쯤으로 여길

            줄 알던 인물이었다. 여하튼 살아가는 동안은, 어떻게든 살아가게 될 것
            이다. 다만 한 줄 읽고 한 줄 쓰면서 조금은 더 단단해지고 초연해지기를.

            언제든 죽어도 좋기를.


             곰글    1975년생. 연세대 철학과 졸업. 본명은 장영섭. 불교신문에서 일하고 있다. 여러 권의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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