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9 - 고경 - 2019년 3월호 Vol.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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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다. 딴에는 열심히 달리고 있지만 겉돌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학교에서나 군대에서나 나는 특이한 꿈을 꾸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으면 스스로는 불편하고 남들은 비웃게 마련이다. 돌아보면 은근히 힘

            겨운 삶이었다. 나는 세상이 미워서 세상을 충분히 즐기지 못하고 있다.
              다만 버티기에는 꽤 자신이 있는 편이다. 아직까지 무너지거나 배를

            곯지는 않는 삶이 그 명백한 증거다. 끝끝내 정년停年 언저리까지는 버티
            자는 게 아침마다의 소망이다. 어물쩍 은퇴하면 이런저런 연금 받아먹으

            며 연명하다가, 예상수명 근처의 나이에서 목숨이 끊어지리라는 게 나름
            의 미래설계였다. 하지만 이마저도 불민한 기대라는 게 최근에 판명됐다.

            CT 사진을 유심히 바라보던 의사는 겁을 주었다. 27년을 가까이한 담배
            가 비로소 일을 낼 모양이다. 지난 두어 달은 암이 아니라 항암 때문에 죽

            고 암이 아니라 암 선고 때문에 아프다는 세설世說을 실감한 시절이다.
              불심佛心이 깊은 이들은 일정한 기간을 두고 수행정진을 한다. 제일 짧

            게는 7일부터 21일 100일 1000일까지 다양하다. 절에서는 야심차게 만일
            결사萬日結社를 벌이기도 하는데, 그게 대략 27년쯤 걸린다. 누군가 1만일

            동안 자신이나 세상을 위해 기도를 할 때, 나는 만일동안 나를 조금씩 죽
            여 온 셈이다. 의사들이 나를 가운데에 놓고 둥글게 서서 호되게 꾸짖는

            꿈을 꾼다. 꿈속에서 나는 ‘그만큼 심적으로 힘들지 않았겠느냐’, ‘그냥
            피우기만 한 건 아니고 그거에 기대서 이거저거 많이 썼다.’ ‘끊어보려고

            무진장 노력하기는 했다’… 계속 항변하지만 소용없다. 하긴 입이 열 개
            라도 할 말이 없다. 어차피 입이 서너 개쯤 있다고 해서, 목숨이 한두 개

            쯤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남의 잘못에만 끙끙 앓다가 내 잘못은 쉽게 지
            나쳐버렸다.

              끝내는 폐결핵인 것으로 확진이 났다. 수술을 할 필요는 없고 대략 6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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