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9 - 고경 - 2019년 4월호 Vol.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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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오의 법을 왕후장상이 본래 정해져 있는 종족이 아님을 말하고, 그 예로
순임금과 부열을 들고 있다. 법은 오래 닦아 공덕을 쌓아 기나긴 세월 동안
얻는 법이 아니라 마음 밖에 얻을 것이 없음을 단박 깨치면 이 자리가 법성
의 자리이고, 이 한 생각이 공덕의 보장고가 된다는 것이다. 닦음과 닦을
것 없음을 논하는 것이 마음을 스스로 비추어 살핌만 같지 않으며, 또한 밖
으로 구하는 자는 자성을 얻을 수 없음에 대한 가르침을 설파하고 있다.
한 바다에 많은 물고기들 노니는데 일해중어유一海衆魚游
물고기들 저마다 한 큰 바다 가지고 있네. 각유일대해各有一大海
바다는 분별심이 없으니 해무분별심海無分別心
모든 부처의 법 이와 같을 뿐이네. 제불법여시諸佛法如是
청매의 개체적 존재로서 중생을 바라보는 선적 직관이 분명하다. 바다
속의 물고기가 크고 작고, 생긴 것이 다를지라도 저마다 존엄한 존재로서
하나의 바다를 차지한다. 이 점에서 물고기는 평등하다는 것임을 설하고
있다. 이는 의상대사 「법성게」의 ‘일중일체다중일一中一切多中一’의 세계이
기도 하다. 한 바다에 많은 고기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하나 가운데
여럿이 있음[一中多]을 비유한 것이고, 물고기들 저마다 한 큰 바다를 가지
고 있다고 한 것은 여럿 가운데 하나[多中一]를 언급한 것이다. 바다의 입
장에서 보면 물고기들은 바다 안에 있는 각각 개체들이지만, 물고기의 입
장에서 보면 물고기들에게는 한 바다는 각각의 바다가 된다. 이때 물고기
는 전체가 되고 각각의 바다는 또 각각의 개체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바
다는 물고기를 품고 있다는 생각도, 물고기는 내 바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러한 무념의 경지는 사량 분별로 헤아려질 수 있는 세계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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