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4 - 고경 - 2019년 8월호 Vol.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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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리 궁구한들 죽음이 온다는 사실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여하간 파티가
막바지에 이르게 되면 더 열심히 놀려고 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남은 인
생,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화두가 자연스럽게 마음에 자리 잡는다.
일단 즐겁게 살기는 살아야 할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못내 억울할 테
니까. 그렇다고 평생이 불행하고 목말랐는데, 죽음이 다가왔다고 해서 갑
자기 즐거워지리라 기대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망상이다. 하기야 내가 아무
리 즐겁자고 노력해도 남들이 그 즐거움을 용인하지 않으면 결코 즐거워지
지 않는 게 인생이다. 한 푼이라고 더 벌려고 참고 버티던 내 삶이, 무릎을
꿇으면서도 걸음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간의 삶이 이를 입증한다. 더구나
생명의 즐거움이란 몸의 즐거움이다. 몸이 즐거우려면 끊임없이 먹고 마시
면서 쾌락을 공급해야 하고 몸의 비위를 맞춰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마
음도 즐거워진다. 그런데 죽으면 그토록 물고 빨고 아끼던 몸은 허물어져
썩는다. 도대체가 남는 게 없는 것이다. 헛수고를 했다는 아쉬움에 더욱 불
행해진다. 차라리 그냥 살아온 대로 살아가는 게 답인가, 싶기도 하다.
“진흙으로 만든 부처님은 물을 건너지 못하고 금으로 만든 부
처님은 고로를 건너지 못하고 나무로 만든 부처님은 불을 건너
지 못한다. 참된 부처님은 마음 안에 앉아있다.”
‘조주삼불趙州三佛’은 모든 몸 가진 것들의 허망함을 말하고 있다. 금부
처님은 아름답고 귀하지만 펄펄 끓는 용광로 속에 들어가면 형체도 없이
사라진다. 나무로 만든 부처님은 불 앞에서 한없이 나약한 중생으로 쪼그
라든다. 진흙으로 만든 부처님은 부처님이라도 물속에서는 한심한 맥주
병일 뿐이다. 결국 몸이 멀쩡할 때나 부처님이고, 신수가 훤할 때나 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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