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5 - 고경 - 2019년 8월호 Vol.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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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처님이라고 알아주는 것이다. 몸이 병들거나 자리를 빼앗기면 부처
님으로서의 권리도 박탈당한다. 나의 주먹은 너의 가위를 용케 이겼으나
그의 보를 어쩌지 못한다. 형체 있는 것들은 그 형체 때문에 반드시 벽에
부딪히게 마련이다. 천적을 하나쯤 갖고 있으며 바다 앞의 소금인형이다.
진흙과 금과 나무의 이런저런 부처님들이 곤란을 겪을 때 모기는 살충제
를 건너지 못한다. 물고기는 맨땅을 건너지 못하고 부장님은 사장님을 건
너지 못한다.
모기의 죽음과 나의 죽음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의 피를 빠는 모기를 쳐 죽였다. 그런데
모기는 정말 죽을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은 것인가. 우연히 엘리베이터에
모기가 기어들어왔고 그 시간에 우연히 내가 타게 된 것이다. 모기가 굳
이 내 피를 빨려고 한 것은 아니다. 빨았어봐야 또 얼마나 빨았겠는가. 나
에게 앙심을 품은 것도 아니다. 다만 자기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내 피를
빨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내 몸에 비해 그의 몸이 훨씬 덩치가 작고 내 힘
에 비해 그의 힘이 훨씬 보잘 것 없으니까, 시체도 못 건지고 처참하게 죽
은 것이다. 모기의 참변은 억울하다. 심지어 그의 흡혈이 아프지도 않고
죽을병을 옮기는 것도 아닌데, 단지 가렵고 짜증난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그를 죽였다. 모기의 억울한 죽음 앞에서 과연 나는 나의 죽음을 억울하
다고 말할 수 있는가.
천문학자들의 자살률이 높다는 얘기를 어디서 주워들었다. 우주 안의
무수히 많은 점 가운데의 하나의 점으로 보이는 지구가 허망하게 느껴져
서 그렇고, 지구 안의 무수히 많은 점 가운데의 하나의 점일 뿐인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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