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8 - 고경 - 2019년 9월호 Vol.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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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누군가가 내게 해가 되지 않으면 그를 이해하지 않는다. 반면 누군
가가 내게 손해를 끼치거나 위협이 되면, 그 속셈이 무엇이고 배경이 무
엇인지 열심히 이해하려 애쓴다. 이렇듯 내 삶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
으면 이해할 필요가 없다. 반대로 내 삶에 크게 영향을 끼치면 무조건 이
해해야 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이해’는 아무리 봐도 한자를 잘못 쓴 것
같다. 이해理解가 아니라 ‘이해利解’다. 내가 살아야 하니까 이해라는 것도
하는 것이다. 계속 이러다간 끝내 속 터져 죽을 것 같으니까, 공감이라는
것도 용서라는 것도 하는 것이다. 理解와 利害는 외모만 쌍둥이가 아니어
서, 서로 몸을 섞어 ‘이익’이라는 자식을 낳는다.
이해理解는 이해利害의 하수인인가
남의 일에 관심이 없고 참견하기도 싫어하는 라이프스타일이다. 타인
에게 민폐 끼치지 않는 동시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삶을 보내자는
게 기본적인 인생계획이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은 남들이 좋아해
주지 않았고 그래서 돈이 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남들이 좋아하는 것
에 흥미를 가져야 했고 거기에 꾸준히 비위를 맞춰주니까 그나마 취직을
할 수 있었다. 알다시피, 세상의 모든 시험이란 결국 남들이 만들어놓은
잣대에 나 자신을 우겨넣는 일이다. 물론 직업을 갖는다는 것만으로 해결
되는 건 거의 없다. 남들 속에서 나를 깎아내는 고행의 시작일 뿐이었다.
직장인의 근속이란 누구에게나 꿈과 자존심을 내어주고 실리를 취하는
과정이다. 윗사람에게 이해를 받아야만 신세가 편안하며, 끊임없이 이해
해야만 마음이라도 편안할 수 있다. 理解는 利害의 하수인인가 보다.
평생 동안 남을 위해 울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 나이가 들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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