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6 - 고경 - 2019년 9월호 Vol.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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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했지만 노래를 잘한다는 칭찬에 잠시 우쭐함이 앞섰다. 노래를 들려
달라는 여우의 재촉에 우쭐해진 까마귀는 입을 크게 벌려 노래를 시작했
다. 그 순간 입에 물려있던 고깃덩어리가 땅으로 떨어졌다. 여우는 고깃
덩어리를 주워 물고는 곧장 쏜살같이 달아났다.
현명한 사람은 입으로만 대화 안해
말 한마디에 금방 히죽 웃고 화내고 우쭐댄다면 까마귀와 다를 바 없
다. 현명한 사람들은 그래서 입으로 대화하지 않는다. 따뜻한 가슴으로
교유交遊하고 대화한다. 가슴으로 나누는 대화는 이간질이나 아첨이나 유
혹 따위가 통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아도 이미 상대가 무엇을 말하고 있
는지 알게 되는 경지에까지 이른다. 부처님과 아난 존자의 관계가 이른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이러한 경지다. 사랑으로 사는 부부는 그래서 입이 아
니라 가슴으로 대화를 나눈다. 눈빛만 봐도 상대의 진의眞意가 어디에 있
는지 진정한 우정은 알고 있다. 때문에 이들에게 말꼬리 잡기란 없다. 가
슴으로 말하는 법, 그리하여 사람을 얻고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진정성
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백장회해(百丈懷海, 720-814) 선사는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의 으뜸
가는 제자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는 제자였다. 선사의 성은 왕씨王氏며,
15세에 출가하여 삼장三藏을 두루 익혀 통달하였다고 전해진다.
중국선종사에서 백장선사가 특별한 인물로 기록되는 이유는 선종사원
의 독립과 선원청규禪院淸規의 제정에 있다. 이전에는 선승이 따로 절을
갖지 않고 율종律宗 절에 의지하여 별실別室을 세우고 거처해 왔었다. 백
장선사는 이로부터 선찰을 독립시켜 새로이 제정한 선원청규에 따라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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