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 - 고경 - 2020년 2월호 Vol.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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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성해無盡性海, 다함이 없는 자성바다, 자성바다 전체가 한 맛이니,
일진법계 무애법계다 그 말입니다. 일미一味라 하는 그것이 즉 무애입니
다. 어째서 일미가 무애냐 하면, 이 우주 세계라 하는 것은 차별로 되어
있습니다. 선과 악이 다르다, 그 말입니다.
이것이 일미가 되려면, 한 맛이 되려면 서로 완전히 통해 버려야 됩니
다. 안 통하면 한 맛이 안 됩니다. 결국 일미라 하는 것은 전부가 통하는
세계, 색과 공이 통하고 모든 것이 다 통해 있는 세계인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안목에서 볼 때는 일미상침시아선一味相沈是我禪이라, 일미, 한 맛
이란 것, 무애, 모든 것이 통했다는 것, 중도니 뭐니 하지만 사실에 있어
아무 소용이 없다, 그 말입니다. 실지와는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항상 하는 소리 아닙니까.
“손가락을 가지고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지 손가락을 보지 말라.” 일승
불교가 “실實이다, 실이다!”라고 하는 이것도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지
달은 아닙니다. 그러니 여기에 얽매여도 안 됩니다. 결국 화엄이니 법화
니 하는 것이 “실이다, 실이다” 하고 자꾸 주장을 하지만 내용에 있어서
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한 동시에 이것도 방편가설입니다.
화엄, 법화 일승원교가 다 방편가설方便假說인 줄을 분명히 알아야만
비로소 자기 마음을 깨치는 길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지 “일승원교가 참
으로 우리 불교의 진리다, 그것이 구경이다, 최고다.” 이렇게 할 것 같으
면 실제에 있어서 우리가 항상 손가락에만 매달려 있지 달은 영원히 못
보고 만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시방세계가 전부 일승불교이며
일승도리인데, 일승도리라 하는 것은 무애법계 즉 중도에 서 있습니다.
이 중도란 불생불멸입니다. 또 양변을 여읜 것, 생멸이 완전히 통하는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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