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8 - 고경 - 2020년 2월호 Vol.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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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라고 시키면 쓴다. 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 조직이 원하는 글을 써야만
돈을 번다. 매일같이 쓰고 기계적으로 쓰는 와중에, 가끔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쓰기도 한다. 그런 글들이 모이고 출판을 해주겠다는 귀인을 만나면
책이 된다. 이 행운만큼은 있어서 10권을 남겼다. 똥만 싸다 끝나는 인생
은 아닌 것 같아서 안도감이 든다. 여하간 글을 쓰려면 생각을 해야 하고
좋은 글을 쓰려면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 글을 쓰는 건 힘들면서도 행복
한 일인데, 적어도 쓰는 동안은 딴생각에 아프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흔들리지 않을 수 있어서” 좋고 “흐려지지 않을 수 있어서” 좋다.
사람은 살면서 왜 흔들리는가? 반드시 욕심 때문이다. 이익을 챙기려
는 생각에 자기 생각을 바꾸게 되고, 손해를 줄이려고 변명을 늘린다. 사
람은 왜 또 놀라는가? 무조건 자기만은 살기 위해서다. 그리고 나무가 흔
들리면 새들이 날아가듯이, 그 마음을 신뢰할 수 없으므로 주변사람들 다
떠나간다. 고기가 놀라면 물이 흐려지듯이, 생존하려는 자들의 세상에는
기댈 곳이 없고 있다 해도 도박판이다.
본디 중생들의 틈바구니에선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 정상이고, 이른
바 정상적으로 살려면 가급적 탁해져야 한다. 그러나 흔들리는 마음은 끊
임없이 머뭇거려서 끝내는 고여 썩는다. 놀란 마음은 유통기한이 길지 않
다. 결국은 나조차 나를 멀리한다. 정신병은 내가 나임을, 나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살면 되는데, 자꾸 딴 데서 찾고 딴 놈을 좇다가, 진짜
내가 내리는 형벌이다.
공부하는 자들은 뚝심을 집으로 삼는다. 흔들리지 마라. 가지는 흔들
려도 뿌리는 흔들리지 않아, 어떻게든 살게 되어있다. 놀라지 마라. 그래
봐야 죽는다. 책에는 으레 이런 메시지를 담으려 노력하고 있다. 고통을
자청하는 일인 데다 거의 돈이 되지 않는 일에 체력을 소진한다는 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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