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7 - 고경 - 2020년 2월호 Vol.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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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살아야 한다.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고 어떤 식으로든 삶을 이어가야

            한다. 그리하여 생계生計란 고래힘줄보다 더 질기고 더 기다랗고 더 피 냄
            새를 풍긴다. 생계에 연연하지 않고 생계를 떠받들지 않으면 삶을 존속하

            기란 불가능하다. 생계에 대한 공포가 나를 여기까지 이끌고 왔다. 어쩌
            면 사는 게 겁이 나서, 여태껏 살 수 있었던 거다.

              구원을 받는 성불을 하든, 일단 멀쩡하게 살아있어야만 뭐라도 이룰
            수 있는 법이다. 깨달음의 기본조건은 밥벌이다. 밥을 먹어야만 살 수 있

            고 생계가 충족되고 참선을 할 힘도 생기며, 밥을 먹으려고 남의 밥이 되
            어주기도 한다. 어쨌든 밥을 먹어야 할 때 밥을 먹고, 만약 죽이라면 죽이

            라도 먹고, 밥그릇을 깨끗이 씻은 뒤 그 다음의 밥을 기대하거나 도모하
            는 것이 삶의 근본이다. 간혹 월급이 줄거나 끼니가 궁해지면 그게 전부

            라는 생각마저 든다. 이럴 때 쓰기라도 하지 않으면 견디기가 어렵다.



                “무엇이 학인學人의 본분입니까?”
                “ 나무가 흔들리면 새들이 날아가고, 고기가 놀라면 물이 흐려

                 진다.”



              나이를 한 살 더 먹은 만큼 올해는 더 초라해질 것이다. 자존감도 따라
            서 늙어간다. 현실에 승복하게 되고 주제 파악도 하게 된다. 성공을 향한

            야심보다는, 오늘 하루도 무사히 넘어갔으면 하는 조바심에 익숙해진다.
            그러나 나도 인간이고 회한이라는 걸 아직도 털어내지 못해서, 문득문득

            떠오를 때마다 글로 옮긴다. 이미 오갈 곳 없고 받아줄 곳 없이 누추한 마
            음이므로, 낙서 몇 줄 더 보탠다고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글을 써야 하는 직업을 갖고 있다. 열심히 써야만 생계를 이을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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