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9 - 고경 - 2020년 3월호 Vol.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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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는 고려청자를 집삼아 살고 있었다. 이런 바다 속의 유물을 태안해양유

            물박물관에서 볼 수가 있었다.



              내가 느끼는 고려청자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최고의 아름다움이었다.
            그래서 도자기를 하면서도 청자는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

            해 왔다. 그러나 가끔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서 도자기를 보노라면 내 발걸
            음이 오래 머무는 곳은 청자 앞에서였다. 우아하고 세련된 아름다움은 이

            를 두고 하는 거구나 늘 마음속으로 흠모를 하고 있었다.
              고려 건국 1100주년을 기념하여 바다 유물을 전시한다기에 별 기대 없

            이 가 보았다. 대부분이 도자기였고 생선뼈까지 있을 정도로 보존 상태가
            좋았다. 재미난 것은 목포에서 배를 그대로 복원하여 바닷길로 오로지 바

            람과 파도와 돛으로 태안까지 옮겨왔는데 16일이 걸렸다고 한다.



              느낌일까?
              내가 알고 있던 고려청자는 너무 완벽해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그릇

            이었는데 여기서 본 고려청자는 왠지 편안한 느낌이었다. 그중에서 내 마
            음을 사로잡은 것은 청자발우였다. 발우는 승려들이 공양할 때 썼던 그릇

            인데 크기가 다른 4점이나 2점이 포개진 상태로 167점이나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고품질 발우는 고려시대 불교 사원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발우뿐만이 아니라 연꽃무늬 사발 접시 등 고급스러운
            문양과 형태가 많았다.



              도대체 고려는 어떤 나라이기에 이런 미감美感을 가질 수 있었을까.

              고려 왕실은 최대 미술 후원자가 되어 그들의 미감이 잘 표현될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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