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9 - 고경 - 2020년 3월호 Vol.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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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유학자인 이옥(李鈺, 1760-1815)은 완주 송광사에 들러 나한전
의 오백나한상을 보고 글을 남겼다. 완주 송광사 나한전 존상은 1656년
에 조각승 무염無染의 지도하에 수조각승 계훈戒訓이 조성한 것이다.
“ 나한전을 보니 나한은 오백을 헤아리는데 눈은 물고기 같은
것, 속눈썹이 드리운 것, 봉새처럼 둘러보는 것, 자는 것, 불
거진 것, 눈동자가 튀어나온 것, 부릅뜬 것, 흘겨보는 것, 곁
눈질하며 웃는 것, 닭처럼 성내며 보는 것, 세모난 것이 있다.
눈썹은 칼을 세운 듯 꼿꼿한 것, 나방의 더듬이 같은 것, 굽은
것, 긴 것, 몽당비 같은 것이 있다. 코는 사자처럼 쳐들린 것,
양처럼 생긴 것, 매부리처럼 굽은 것, 주부코인 것, 밋밋한
것, 납작코인 것, 대롱을 잘라놓은 듯한 것이 있다.
입은 입술이 말려 올라간 것, 앵두 끝처럼 생긴 것, 말 주둥이
같은 것, 까마귀 부리 같은 것, 호랑이 입 같은 것, 비뚤어진
것, 물고기처럼 뻐금대는 것이 있다. 얼굴은 누런 것, 약간 파
란 것, 붉은 것, 분처럼 흰 것, 복사꽃 같은 것, 불그레한 것,
밤색인 것, 기미 낀 것, 사마귀 있는 것, 마비된 듯한 것, 어
루러기가 돋은 것, 혹이 난 것이 있다. 물고기 눈에 사자 코를
한 것, 양 코에 눈썹이 드리운 것, 사자 코에 부릅뜬 눈에 호
랑이 입을 한 것이 있다.
눈이 같으면 코가 다르고, 코가 같으면 입이 다르고, 입이 같
으면 얼굴빛이 다르며, 모두 같으면 키와 체구가 다르고, 키
와 체구가 같으면 자세가 다르다. 혹은 서고, 혹은 앉고, 혹
은 숙이고, 혹은 옆의 것과 가깝고, 혹은 왼쪽을 돌아보고, 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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