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3 - 고경 - 2020년 3월호 Vol.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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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83호 | 차와 불교 1            상고시대 차는 채소였고, 약으로

                                           쓰이기도 했다. 『시경詩經』 「국풍國
                                           風」·「패풍邶風」·「속풍谷風」에 “누가

                                           차를 쓰다고 했는가, 달기가 냉이와
            신라에 차를                         같구나[誰谓荼苦, 其甘如荠].”라는 구절

            소개한 구법승들                       을 보면 과거 차를 나물로 먹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원래 ‘도荼’는 ‘쓴

                                           나물[苦菜]’이라는 뜻이다. ‘차茶’라는
            박동춘 철학박사
                                           글자가 나타나는 것은 당나라 이후

                                           이며, 육우(陸羽, 733~804)가 도荼 글
                                           자에서 한 획을 없애 ‘차’ 자를 만들

                                           었다고 전해진다.
                                              1973년경 여요余姚 하무도河姆渡

                                           유적에서 차를 나물로 먹었던 흔적
                                           이 발견되었다. 이 유적에서 부엌이

                                           라 추정되는 곳에서 나무뿌리가 발
                                           굴되었는데 바로 차나무 뿌리였다.

                                           이 유적은 이미 7000년 전, 월越 지
             박동춘  동국대 일반대학원 선문화 전공,
             철학박사. 응송 박영희 스님에게 초의선
                                           역에서 차를 채소로 섭취했다는 사
             사로부터 이어진 제다법 전승. 현 (사)동
             아시아차문화연구소  소장.  한국전통문         실을 알려준다. 한편 신농씨神農氏
             화대학교  겸임교수.  성균관대·동국대
                                           의 신화에서는 차를 약초로 이용한
             등에서 강의했고, 저서 『초의선사의 차
             문화연구』 등 7권의 저술이 있다. ‘초의
                                           다. 신농씨가 모든 약초를 맛보다가
             선사와 경화사족들의 교유에 대한 연구’
             및 ‘한국 차 문화’ 전반을 연구하며, 순천      독에 중독되어 사경을 헤매었는데,
             대광사지에서 ‘동춘차’를 만든다. 한국차
                                           찻잎을 먹고 살아날 수 있었다고 한
             문화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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