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6 - 고경 - 2020년 3월호 Vol.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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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라 색향기미를 온전하게 드러낸 탕법

                                       이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육우는 제다법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선종의 도움을 받았
                                       다. 그 중 한 명이 묘희사 승려 교연皎然

                                       이다. 교연은 차에 밝은 수행승으로, 선
                                       시와 수행력, 차의 이론에 밝았다. 760년

                                       경 육우는 안사의 난을 피해 호주에 머
                                       물렀고, 763년경 저산의 묘희사에 주석
           사진 3. 마조도일 초상.
                                       하던 교연을 만나 망년지교忘年之交를 맺
           었다. 당시 교연은 고저顧渚 지역에 다원茶園을 조성하고 차를 만들었다.

           『고저산기』는 이 시기 교연이 남긴 고저에 대한 기록이다. 육우는 교연과
           의 만남을 통해 차에 대한 이해를 심화할 수 있었다. 이후 육우는 『다경茶

           經』을 저술하는 과정에서도 교연의 영향이 컸을 것으로 보인다.
             교연 뿐 아니라 다수의 선종 승려들은 차를 수행에 활용해왔다. 특히

           중국 선종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고, 불교문화에서도 차는
           중요한 위치를 가졌다. 차를 중시하는 선종의 전통은 수행법과 관련이 깊

           다. 선종 초조初祖 달마 대사는 면벽 좌선 수행을 했는데, 이러한 수행법
           의 최대 장애는 바로 졸음이었다. 따라서 졸음을 수마睡魔라고 부르며 매

           우 경계했다. 그리고 차는 졸음을 쫓을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채택
           되었다. 특히 차를 마시며 수행하는 풍토는 신수(?-706)의 북종선보다 남

           종선에서 정착되다가 점차 북종선 승려로 확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먼저 남종선에서 차를 마시며 수행한 것은 남선의 시조 혜능(慧能, 638-

           713)이 소주 조계사의 보림사, 대범사에 머물며 제자와 신도들에게 제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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