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7 - 고경 - 2020년 3월호 Vol.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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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문하에 수많은 제자를 배출했기 때문이다. 혜능이 주석했던 지역은

            차의 주산지였다. 그러므로 수행에 필요한 차를 얻기에 용이했을 것이다.
            특히 그의 제자 남악(677-744)에게 법을 받은 마조(709-788)가 법을 설파했

            던 강서江西은 차 주산지였다. 그러므로 수행 중에 차를 마시는 풍토의 정
            착이 원활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남방의 선종에서 차를 마시며 수행하는

            풍습이 널리 퍼져 있었다. 봉연의 『봉씨견문록封氏見聞錄』에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데, 수행 풍습은 다음과 같다.




                “ 남쪽 사람은 차를 마시길 좋아하지만, 북쪽 사람은 처음에 많
                 이 마시지 않았다. 개원(開元, 713-741) 연간에 태산의 영암사에
                 강마 스님이 있었는데, 선교를 크게 일으켜 선을 닦으면서 잠

                 을 자지 않으려 힘썼으며, 또 저녁을 먹지 않고 모두 차를 마

                 시는 것에 의지하였다. 사람들이 품에 (차를) 끼고 도처에서 차
                 를 마셨는데, 이로부터 점점 더 모방하여 마침내 풍속을 이뤘

                 다[南人好飲之, 北人初不多飲. 開元中, 太山靈巖寺有降魔師, 大興禪教, 學
                 禪務於不寐, 又不夕食皆恃其飲茶. 人自懷挾, 到處煮飲, 從此轉相倣傚, 遂

                 成風俗起].”


              봉연에 따르면 남방에서 먼저 차를 수행에 활용하기 시작했고, 8세기

            부터 차를 마시며 수행하는 풍토가 유행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
            다. 특히 승단에서는 오후불식午後不食이라는 규율이 있었지만, 수행 중에

            차를 마시는 것만은 허용하였다. 그러므로 남선의 이런 수행 규율은 백장
            회해(720-814)의 『청규』가 나온 후 더욱더 체계화하여 차를 마시는 풍습이

            의례되었다. 특히 승려들이 출타할 때 차를 소지해야 하는 계율도 이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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