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8 - 고경 - 2020년 3월호 Vol.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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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 제도화 되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므로 『봉씨견문록封氏
見聞錄』은 8세기 북쪽 선원에서 차를 마시며 수행하는 풍토가 정착되어간
정황을 살필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9세기에 차는 승단의 일상에 보편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조수선사
(778-897)가 수좌를 제접할 때 ‘차나 마시게[喫茶去]’라고 한 것은 이런 수행
의 풍토 속에 차의 위치를 짐작하게 한다.
우리나라에 처음 차를 들어온 계층으로는 도당구법승, 숙위 유학생,
사비 유학생, 사신, 상인 등을 거론할 수 있다. 특히 도당구법승 중에서
선종에 관심을 두었던 수행승이 차를 유입한 계층으로 여겨진다. 이들은
주로 해로를 이용했다. 혹 육로를 이용할 경우에 적지인 고구려와 만주를
거쳐 당나라로 들어가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므로 이들은 해로를
이용하여 산둥반도의 등주登州나 절강에 위치한 명주明州로 들어가 양쯔
강을 따라 내륙으로 들어가는 노선을 선택하였는데, 상선을 이용하거나
혹은 당이나 신라 사신들이 타는 사절단 배를 이용하기도 하였다.
일승日僧 엔닌(圓仁, 794-864)의 『입당구법순례행기』는 9세기 무렵 도당
구법승들이 이용한 해로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이는 그가 838년 7
월부터 847년 초겨울까지 9년 반 동안 당의 대운하, 동해안 일대, 양쯔강
을 통해 내륙 등지를 여행하면서 그의 구법 순례의 일상을 기록한 구법
일지日誌이다. 이 자료에 의하면 신라 거주민이 장강, 양주, 대운하의 상
권을 장악하고 있었던 상황, 이들을 통해 그가 타고 갈 배와 물자를 공급
받았던 상황을 자세히 기록하여 신라 거류민의 활약상을 살펴볼 수 있다.
한편 그의 구법 해상 해로는 살펴보면 첫째 산둥반도~발해~ 압록강
입구, 혹은 대동강 입구에 이르는 항로를 이용했고, 둘째 산둥반도~ 황
해 인천 근해 덕물도에 이르러 연안의 강구江口에 이르는 항로와 셋째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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