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5 - 고경 - 2020년 4월호 Vol.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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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억건곤족하장百億乾坤足下藏 시간과 공간도 발아래 감춰져 있네.
학수잠휘시적멸鶴樹潛煇是寂滅 사라쌍수에 깃든 것은 적멸의 빛,
금강사리방광명金剛舍利放光明 금강 같은 사리가 밝은 빛을 내뿜는다.
- 갑사 진해당 주련 -
이렇듯 부처님의 가르침과 불가기공을 항상 같이하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진해당 주련 중 학수잠휘시적멸鶴樹潛煇是寂滅을 학보鶴步와 관련하
여 자세히 설명해 주곤 하였다. 경전에는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실 때 대지가 진동하고 천고天鼓가 저절로
울리며 사해四海의 바닷물이 뒤집힐 듯 파도가 일고, 수미산이
저절로 기울 듯 흔들리고, 거센 바람이 미친 듯이 불어 숲속의
나무가 꺾어지고, 스산하고 삭막하여 초목이 말라비틀어져 어
지럽게 흩날리는 것이 평소와 달랐다. 이때 사라쌍수娑羅雙樹
나무가 하얗게 말라 죽으며 백학처럼 흰빛으로 변하여 학림 또
는 학수라고 불리었다. 이것은 죽음이 아니라 윤회의 수레에
서 벗어난 열반적정을 말하고 있다.”
부처님 열반지에 있는 사라쌍수가 학수로 변한 것 자체가 큰 뜻을 내
포하고 있다. 학은 불로장생의 상징이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셨으나
실로는 영원한 생명, 진리 자체인 적멸에 들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불
교가 국교였던 고려의 청자를 대표하는 청자운학문 매병을 보며 부처님
열반지인 학수鶴樹를 떠올린 것은 ‘전생부터 불자였을’ 내겐 당연한 일이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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