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0 - 고경 - 2020년 4월호 Vol.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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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출가를 하겠습니다

                  뒷산에다 절을 짓고, 철새에게 백팔배를 가르칠 겁니다
                  돌들에겐 목탁 치는 법을, 밭 가로 흩날리는 비닐들을

                  끌어 모아,
                  참선에 몰두토록 하겠습니다

                  이만하면 지옥도 불국토라 할 만 하겠죠?
                  아, 그러면

                  저 극락이 설 자리는
                  또 어디인가요?

                  청도 운문사 내원암 가는 길에
                  도랑가로 내려가, 물고기 스님 세 분에게 묻는다

                  물속을 왔다 갔다, 금새 돌 밑으로 숨고
                  아무도 응대하지 않는다

                  불멸의 침묵이 물끄러미 쳐다보는데,
                  구름도 몸이 무거워 밑바닥으로 내려와 눕는다

                  지옥도 짐이고, 극락도 짐이란다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란다

                  들 것에 실려 떠나는 생각을 본다
                  내 생전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로

                  떠나가는 그림자를 보았다
                  삭발한 허망을 붙들고 우는 신발을 쳐다보았다

                  지옥에서 쫓겨난 어둠이 터벅터벅
                  천국으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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