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0 - 고경 - 2020년 5월호 Vol.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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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수 있다. 31)
그러나 쫑카빠는 다르게 보았다. “청
변의 자립논증 방식을 월칭이 비판한 것
은 현상의 본질에 대한 이해에 있어 근
32)
본적인 차이를 나타낸 것” 이며, 그래
서 “『반야경』이 설한 공성에 대해 믿을
만한 견해를 드러낸 용수의 핵심적인 가
르침을 꿰뚫고 있는 것은 귀류파들 뿐이
며, 자립논증파는 미세하게 실유론을 주
장하고 있다. 자립논증파의 견해로는 윤
사진 11. 『샨타라크쉬타의 중관
사상』, 불교시대사. 회를 벗어나 해탈하는 것조차 확신할 수
33)
없다.” 고 쫑카빠는 지적했다. 지장, 적
호, 연화계, 청변 등은 어느 순간에 ‘실
유론자實有論者’가 되어 버렸다. 그들은
과연 실유론자인가? 중관 해석의 새로
운 문을 연 쫑카빠의 관점이 하나의 ‘교
조敎條’가 된 것은 아닐까? 이렇게 말하
면 지나친 것일까?
아무튼 현재 티베트불교의 사상적 중
심은 누가 뭐래도 쫑카빠의 견해를 계
31) 이에 대해서는 『께따까』, p.95 참조.
사진 12. 『까말라씰라의 수습차제연구』, 32) 『께따까』, p.90.
불교시대사. 33) 『께따까』,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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