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5 - 고경 - 2020년 5월호 Vol.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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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을 설치했던 세조는 스스로를 ‘불제자’로 칭했으며 원찰로 1466년에 상
원사를 중창했다. 이 같은 중창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자료가 국보 제
292호로 지정된 「상원사 중창권선문(1466년)」이다.
세조가 상원사로 가는 도중 계곡에서 목욕할 때 등을 밀어주었다는 문
수 동자를 형상화했다는 설화는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에 게재된 것으
로 후대의 기록이라는 설이 있다. 실제로 상원사 문수 동자상 복장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에 의하면 세조의 딸 의숙공주(1441-1477)가 그의 남편
정현조(1440-1504)와 함께 ‘지혜로운 아들을 얻기 위해 조성한 것’임을 알
수 있다. 1453년에 혼인한 의숙공주 부부에게 13년이 지나도록 자식이
없었던 것은 세조의 병만큼이나 왕실의 근심거리였을 것이다.
문수기도를 통해 아들을 얻고자 했던 신앙 형태는 조선 후기까지도
지속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1691-
1756)도 그의 어머니가 삼각산 문수사에서 문수기도를 통해 아들을 얻었
기 때문에 ‘문수’로 명명했다는 설에서도 유추가 가능하다. 30대 중반까
지 아들이 없던 공민왕이 연복사에서 문수기도를 통해 아들을 얻었다는
『고려사』의 기록을 통해 왕실에서의 문수신앙을 엿볼 수 있다.
동자 모습을 한 문수 보살상은 『금강정경유가문수사리보살법』에 “문수
사리 5계 동자[五髻童子, 5개의 상투를 가진 동자] 형상을 그리는데 몸은 황금
색이고 갖가지 영락으로 장엄하고 있다. 오른손에는 금강검金剛劍을 쥐고
왼손으로는 경전을 들고 있다.”는 내용에 근거를 둔 것이다.
1466년에 조성된 상원사 문수 동자상은 5개의 상투 대신 2개만 표현했
고 지혜를 상징하는 금강검과 경전 대신 설법인을 짓고 있을 뿐이다. 요
나라(907-1125) 때 조성된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의 문수 보살상(사진
3)은 지물인 금강검과 경전은 없어지고 일부만 남아있지만 5개의 상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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