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2 - 고경 - 2020년 6월호 Vol.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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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의 여가에 차를 즐긴 정취를 시로 남긴 인물 중에는 대각국사 의천
(大覺國師 義天, 1055-1101, 사진 1), 진각국사 혜심(眞覺國師 慧諶, 1178-1234), 천
인(天因, 1205-1248), 원감국사 충지(圓鑑國師 沖止, 1226-1292), 태고화상 보우
(太古和尙 普愚, 1301-1382), 나옹화상 혜근(懶翁和尙 惠勤, 1320-1376) 등이 있는
데, 가장 많은 시를 남긴 인물은 충지로, 14수의 다시茶詩를 남겼고, 혜심
도 9수首 정도의 다시茶詩를 남긴 것으로 파악된다. 의천과 혜근이 각각 4
수首씩 차와 관련된 기록을 남겼으며, 몇몇 스님들도 각각 1수首 정도의 시
를 남기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남긴 차에 대한 담론은 대개 11-14세기로 편중되어 있
는데, 이 시기는 차품의 질적 수준이나 다구茶具의 발달에 있어 완성미를
갖춘 시기였다는 점이다. 특히 고려적인 색채를 완성, 그 문화적인 자부심
이 대단하였던 때와도 맞물려 있다. 특히 문종(文宗, 재위 1046-1083) 때에는
이미 송대 문화와 견주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자부심
이 팽배해 있었는데, 이런 정
황은 『고려사』 1058년 8월 기
사에 “고려 왕이 탐라와 영암
에서 목재를 베어 큰 배를 만
들고 장차 송과 통하려 하였
다. 그때 내사문하성內史門下
省에서 말하기를 ‘우리나라의
문물과 예악이 흥성한 지 이
미 오래되었고 상인들의 배가
사진 1. 대각 국사 진영. 선암사 박물관 소장. 연 이어져 진귀한 보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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