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7 - 고경 - 2020년 6월호 Vol.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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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용 차와 약을 보냈다는 사실은, 고려와 송의 교류에 의천이 미친 영향
력이 대단했음을 짐작케 한다. 송 황제가 보낸 어차御茶란 무엇일까. 10세
기 북송에서는 어원이 확장되어 더욱더 극품의 차가 생산되었는데, 특히
채양(蔡襄, 1012-1067)이 소용단小龍團을 완성한 후, 더욱 세련된 용봉승설龍
鳳勝雪, 어원옥아御苑玉芽 같은 최상품 단차류가 생산되던 시기이다. 황제가
보낸 어차御茶은 이런 종류의 차였을 것이다.
아무튼 의천의 다시茶詩 「화인사차和人謝茶」에는 “달빛을 끓여 다화를 피
워 속된 시름 씻어낸다[煮花烹月洗塵愁].”고 나온다. 여기에서 ‘다화를 피워
[煮花]’라고 한 것은 바로 가루차를 격불하면(사진 3) 마치 차 거품이 꽃처럼
핀 모양을 표현한 것이며, “달빛을 끓여[烹月]”라는 말은 샘물에 비친 달을
물과 함께 떠다가 찻물을 끓인다는 말이다.
차를 즐기는 이의 격조를 나타낸 것으로, 그의 고상한 감상안이나 예술
적인 감수성을 가늠할 수 있다. 그가 차를 마신 후, 차의 효능을 담론한
것은 바로 “몸이 가뿐하여 삼통三洞에 노니는 것보다 낫고, 뼛골이 상쾌
하여 갑자기 가을에 접어든 듯[身輕不後遊三洞, 骨爽俄驚入九秋]”하다는 것이
다. 이는 차의 가치와 차를 마시는 연유를 극명하게 공감한 구절이라 하
겠다. 수행승이나 문인이 차를 곁에 둔 연유도 이 구절에서 유추할 수 있
다. 고려와 송의 교류를 왕성하게 이끌었던 의천, 그는 결국 수행자였다.
그의 다시茶詩에 장식을 배제한 담박한 차의 세계가 담겨있는 것도 이 때
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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