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2 - 고경 - 2020년 7월호 Vol.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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及拆兩目俱瞑, 經七日乃開. 每飮乳後, 輒轉身背母而臥, 父母怪之].”

             윗글은 진각 국사가 이미 범인과는 달랐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특히

           태어날 때 가사를 메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는 점과 젖을 먹은 뒤 모친

           을 등지고 누웠다는 것은 그가 수행자의 자질을 타고났음을 암시하는 것
           이요, 그가 병이 났을 때 태어난 곳에 산석山石이 무너지고 새 떼가 골짜기
           에 가득하게 날아와 10여 일을 울었다는 점은 그가 범상치 않은 성인이었

           음을 상징하는 것이라 하겠다. 「진각국사비명」에는 그가 유불에 통달했고,

           천성이 온화하고 충실했으며 내외경전에도 능통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진각국사비명」에 최우와 그의 관계를 기술하는 곳에, 최이가 혜심에게
           차를 공급했다는 기록이 있어 특히 눈에 띈다.




                “지금의 문하시중門下侍中 진양晉陽 최 공이 국사의 풍운風韻을
                듣고 성의를 다하여 여러 번 서울로 맞이하려고 하였으나, 국
                사는 끝내 이르지 않았다. 그러나 천 리의 거리라 해도 서로 마

                음의 합함은 마치 대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최 공은) 다시

                두 아들을 보내 국사를 모시게 하였고, 무릇 국사의 생활 도구
                를 힘을 다해 마련해 주었으며, 차茶·향香·약이藥餌·진수珍羞·
                명과名菓와 도구道具나 법복法服에 이르기까지 항상 제때 공급

                하여 끊어지지 않았다.[今門下侍中晉陽崔公, 聆師風韻, 傾渴不已. 屢

                欲邀致京輦, 師竟不至焉. 然千里相契, 宛如對面. 復遣二子參侍, 凡師之常
                住資具, 莫不盡力營辦. 至於茶香藥餌珍羞名菓及道具法服, 常以時餉遺 連
                亘不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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