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5 - 고경 - 2020년 7월호 Vol.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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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힌 것으로, 시자를 부르는 소리, 송라의 안개, 돌길 바람, 차향은 은유
적으로 자신과 보조 국사의 불연佛緣을 암시한 것으로, 『조계진각국사어
록』 「시중示衆」의 일부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차에 대해 읊은 시詩는 『무의
자시집』에 8 수首가 전해진다. 「전물암에 머물며[寓居轉物庵]」라는 시에는 음
다를 일상화했던 수행자의 면모가 잘 드러나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봉산 앞, 오래된 암굴 五峰山前古庵窟
그중에 전물암이 있다네. 中有一菴名轉物.
내 그 암자에 살면서 활계를 도모하지만 我栖此庵作活計
그저 껄껄 웃을 뿐, 토설하기 어려워라. 只可阿阿亂吐出.
가장자리 깨진 차 사발, 다리 부러진 솥 缺脣椀折脚鐺口
차 끓이며 하루를 보내네. 煮粥煎茶聊遣日.
게으름에 쓸지도 않고 베지도 않으니 疎慵不掃復不芟
마당의 풀 구름처럼 무릎까지 잠기네. 庭草如雲深沒膝.
시에 알 수 있듯이 보조 국사에게 나아가 인가를 받기 전에도 그는 소
탈하고 자유 자재했던 수행자였다. 오래도록 그의 곁을 지킨 다구(茶具, 사
진 4)는 낡을 대로 낡아진 기물, 이를 통해 그가 이미 차에 익숙한 수행승
이었음이 은근히 드러난다. 그의 일상에 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했음
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고려 후기 불교계를 이끌었던 진각 국사의 힘
도 분별심이 사라진 수행력에서 기인된 것이리라. 늘 차를 마시며 구름처
럼 자유로웠던 그의 모습은 이미 익을 대로 익은 수행자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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