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9 - 고경 - 2020년 11월호 Vol. 91
P. 159
천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절박한 문제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한 결 같이 행복에 대한 염원일 테
지만, 수천 년 세월을 흘러 오늘날의 언어로 담아
낼 수 있는 적절한 표현을 찾기란 매우 어렵다. 굳
이 말하자면, 암각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이 존재
인데 저 존재가 되는 것’, ‘이 존재인데 저 존재 안
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상태이다. 내가 그 속으
로 들어가는 것, 그 결과 서로 다른 것이 내가 그
가 되어 나도 그도 아닌 것을 만들어 내는 것, 쌍
성합일雙性合一이요 양성일체兩性一體다. 음양의
합치다. 생명의 시작이다. 역설이다. 우주 생성과
사진 3. 일감 스님,
소멸이 모두 역설 아닌가. 끊어졌다 이어지고 찢 『하늘이 감춘 그림, 알타이 암각화』,
불광출판사, 2020.
어졌다 합일되는 것은 인간 삶에 흐르는 진리이
자 원리일 것이다. 신의 예언이면서 역설적 모순이며 어쩔 수 없이, 거부할
수 없는 이율배반적인, 근원이 역설적인 그런 상태, 모순, 아이러니, 아이
러니의 역설, 비극, 이 역설적인 상태가 다시 동력이 되어 되풀이되면서 새
로운 생명이 생성한다. 나는 스님이 암각화 제단 앞에서 기도하며, 역설의
극점에서 기뻐 울고 계신 모습을 보고 이렇게 생각했다.
암각화는 자기의 생각과 뜻을 지키려 했던 사람들의 형상 표현이다. 그
림을 보면 이상과 현실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전통에도 얽매이지
않았다. 오히려 창신暢神했다. 형식화에 치중하는 것도 경계했다. 그래서
오래된 현재이다.
돌은 물질이고 재료일 뿐이다. 이 위에 손으로 긁고 피로 그려 형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형상 너머의 세계로 향하게 한다. 여기에는 자기 수양, 자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