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7 - 고경 - 2020년 11월호 Vol.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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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을 추정할 수 있었지만, 어떤 그림은 상당한 수준의 지식과 지혜가 있어
야 했다. 암각화를 읽어내는 스님의 논리는 때로는 명확했고, 다양했다. 스
님은 선사시대 사람들은 왜 바위에 이런 독특한 그림을 그렸을까, 그림은
무엇을 말하며 어떤 의미가 있는가, 왜 이곳을 선택하여 집중적으로 그렸
을까, 태양신이 인간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등, 스님의 추론은 다양
하게 확장되어갔다.
나는 스님의 사고에 간섭하거나 이의를 달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지
식도 내가 만들어 놓은 울타리일 수 있음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스님과 함
께 한 첫 답사에서 암각화를 대하는 스님의 지극한 마음과 창의적인 해석
에 감탄했다. 스님 또한 첫 답사에 깊은 의미를 두는 듯했다.
스님은 다른 지역으로 영역을 넓히며 암각화(참고 사진 1·4)를 답사하고
나름의 사고를 만들어나갔다. 나는 스님에게 몽골 알타이 지역 답사를 추
천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차강살라와 바가오이고르 그리고 차강
골 지역이다. 스님은 이 세 곳 중 특히 차강골에 관심이 많았다. 암각화가
있는 곳은 성소聖所이거나 제단祭壇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스님은 이 지점
에 특유의 촉수가 발동한 듯 4계절을 오가며 집중적으로 섭렵했다. 특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닌 눈 덮인 겨울 답사를 선호했다. 암각화에 흠뻑 빠
진 스님의 모습을 보면서, 어느 순간 스님은 암각화를 그린 선사시대 사람
들과 소통하며 자연과 신을 궁구窮究하는 깊은 세계로 들어간 것이 아닌
가 싶었다.
카자흐스탄에 있는 새로운 암각화 유적인 쿨자바시를 답사했을 때였다.
스님은 이곳에서 본 도상圖像과 탐갈리에서 확인한 도상을 비교하며, 두 암
각화의 상호 연관성과 영향 관계를 설파했다. 탁월한 추론이었다. 학위만
없을 뿐 박사급 수준의 식견이었다. 스님에겐 어떤 선입견도 없이 암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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