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 - 고경 - 2020년 11월호 Vol.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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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모든 것을 다 버린 사람, 법을 위해서 몸을 버린 사람으로 청나라 태
2)
종 순치 황제(1638-1661) 를 보기로 들 수 있습니다.
만주족이 만주에서 일어나 십팔 년 동안을 싸워 중국을 통일하여 대청
제국을 건설하였는데, 그 세력 판도는 남·북만주, 내·외몽골, 서장, 안남에
이르러서 중국 역사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세계 역사에서 가장 큰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그런 순치 황제가 대청제국 창업주의 영광을 차버리고 출가
를 했습니다. 본디부터 불교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부귀영화란 일시적인 것
이며, 또 대청제국의 황제 노릇도 영원에서 영원으로 계속되는 무한한 시간
에 비하면 눈 깜짝할 사이의 일이며 아이들의 장난일 뿐이라고 깊이 통찰
했습니다. 그래서 황제는 굳은 각오로 곤룡포를 벗어 던지고 야반도주를 했
습니다. 그리하여 자기 모습을 감추고 금산사에 가서 나무꾼이 되어 머슴
살이로 스님들 시봉을 하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때 출가시를 썼습니다.
나는 본래 인도의 수도승인데 我本西方一衲子
무슨 인연으로 타락해 제왕이 되었는가! 緣何流落帝王家
3)
2) 순치제(順治帝, 1638-1661). 태종太宗의 9번째 아들로 청나라 제3대 황제가 되었다. 연호를 순치順治로 정
하여 순치제로 불린다. 명나라의 정치체제와 지배이념을 계승하고 한인을 등용하는 등 정치적 안정을
이룩했다.
3) 순치제의 「출가시」 전문은 다음과 같다.
天下叢林飯似山, 鉢盂到處任君餐. 黃金白玉非爲貴, 惟有袈裟披最難!
朕爲大地山河主, 憂國憂民事轉煩, 百年三萬六千日, 不及僧家半日閑.
來時糊塗去時迷, 空在人間走一回. 未曾生我誰是我? 生我之時我是誰?
長大成人方是我, 合眼朦朧又是誰? 不如不來亦不去, 也無歡喜也無悲.
悲歡離合多勞意, 何日淸閑誰得知? 世間難比出家人, 無牽無挂得安閑.
口中吃得淸和味, 身上常穿百衲衣. 五湖四海爲上客, 逍遙佛殿任君嘻.
莫道僧家容易做, 皆因屢世種菩提. 雖然不是眞羅漢, 也搭如來三頂衣.
兔走鳥飛東復西, 爲人切莫用心機, 百年世事三更夢, 萬里江山一局棋!
禹尊九洲湯伐夏, 秦呑六國漢登基, 古來多少英雄漢, 南北山頭臥土泥!
黃袍換却紫袈裟, 只爲當初一念差. 我本西方一衲子, 緣何流落帝皇家!
十八年來不自由, 南征北戰幾時休? 朕今撒手歸西去, 管你萬代與千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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