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 - 고경 - 2020년 11월호 Vol.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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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없이 울며 쫓겨난 아난 존자는 비야리 성城으로 갔습니다. 그곳에
            가니 국왕이며 대신 등을 비롯한 많은 신도들이 큰스님 오셨다고 오체투
            지五體投地를 하고 법문을 청하므로, 아난 존자는 가섭 존자에게서 쫓겨난

            것은 다 잊어버리고 잘난 체하며 법문을 했습니다. 이때 그 부근에 발기라

            고 하는 비구가 있었는데 아난이 그곳에 온 뒤로 많은 신도들이 모여 법석
            을 떠니 시끄러워 도저히 공부가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발기 비구가 게송
            을 하나 지었습니다.




                좌선하고 방일하지 말아라,                     坐禪莫放逸
                아무리 지껄인들 무슨 소용 있는가.                多說何所利    6)



              입 다물고 참선하라는 말입니다. 아난 존자가 그 게송을 듣고는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이제 참으로 공부해야겠다고 참회하고는 다른 곳으로 가서
            불철주야로 앉아서 정진했습니다. 졸릴 듯하면 일어나 다니고 다리가 아프
            면 앉았다 하면서 자꾸 선정을 익혔습니다. 며칠이 되었는지도 모르게 그

            렇게 여러 날 공부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어찌나 고달픈지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잠깐 누워 쉬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목침木枕을 베려고 턱
            드러눕다가 확철히 깨달았습니다. 참으로 무심삼매를 성취한 것입니다. 목
            침을 집어던지고 밤새도록 걸어서 가섭 존자에게 갔습니다. 가섭 존자가

            몇 가지 시험을 해보니 확철히 깨친 것이 확실하므로 결집하는 사자굴에

            참가할 자격을 주었습니다. 경에 보면 ‘여시아문如是我聞’이라는 말이 있는




            6)  『사분율四分律』(T22, 967a), “靜住空樹下 心思於涅槃 坐禪莫放逸 多說何所作.” 『사분율』 등에는 ‘多說何所
             利’ 대신 ‘多說何所作’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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