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3 - 고경 - 2020년 12월호 Vol.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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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쓸데없이 보내게 되어 선인善因을 가지고도 도리어 악과惡
                果를 초래함을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므로 마음을 현명하게 활
                용하지 못함을 삼가야 하지 않겠는가. 무릇 어리석게 마음을 활

                용하는 것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총체적으로는 두 가지로 요

                약된다. 첫째는 유에 집착하는 것이고, 둘째는 무에 집착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두 가지 견해는 모두 외도가 집착하는 것으
                로 불법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날 참선하는 사람들은 비록 색신이 허가虛假인 줄 알

                면서도 다시 집착한다. 곧 영성은 실實로서 그것이 색신 안에 들
                어있다고 말한다. 그 영성이야말로 영명靈明·각조覺照하고 사상思
                想·분별分別하는 심성으로서 진실한 아我라고 간주한다. 혹 망상

                을 모두 그치고 잠시도 분별념이 발생하지 않아서 몸은 고목과 같

                고 마음은 식어버린 재와 같은 경우를 진실한 구경처로 간주한다.
                이 두 가지 경우는 모두 어리석게 마음을 활용하는 것으로 대
                단히 불쌍한 일이다. 비유하면 모래를 짜서 기름을 뽑으려는 것

                이고, 소의 뿔에서 우유를 얻으려는 것과 같다. 그것으로는 설

                령 진겁을 지내더라도 끝내 조금도 얻을 수가 없다. 또한 심성을
                아我로 인식하는 자의 경우에 그 아를 알아차리는 것은 누구인
                가. 만약 심성이 곧 아라면 심성을 알아차리는 그 아는 또 다른

                하나의 아이다. 만약 두 가지의 경우가 모두 아라면 그 어찌 한

                몸에 두 개의 아가 있는 꼴이 아니겠는가. 모든 경우에 섬세하
                게 그것을 생각해볼 일이다. 그러므로 심성을 알아차리는 그것
                은 아가 아니다.

                또한 잠시도 분별념이 발생하지 않는 것을 진실한 것이라고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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