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6 - 고경 - 2020년 12월호 Vol.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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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답했다 : 내가 지금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에 대하여 그
대의 의견을 답해 보라. 그대는 지금 눈으로 색을 보고 있는가.
그 사람이 답했다 : 예, 보고 있습니다. 내가 물었다 : 마음이 색
에 집착하는 것인가. 그 사람이 답했다 : 아니요, 집착하고 있지
않습니다. 내가 물었다 : 그와 마찬가지로 귀로 소리를 듣고 있
는가. 코로 향기를 맡고 있는가. 혀로 맛을 보고 있는가. 몸으로
촉감을 느끼고 있는가. 의식으로 법을 알고 있는가. 그대의 마
음은 또한 마음은 성·향·미·촉·법에 집착하고 있는가. 그 사람
이 답했다 : 아니요, 집착하고 있지 않습니다. 내가 물었다 : 그
와 같은 경지에 이르렀을 때 그대 심중의 견해는 어떤가. 그 사람
이 답했다 : 그와 같은 경지에 이르렀을 때 제 심중에는 어떤 집
착이 없고 오직 유·무의 견해만 남아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 그
대의 그 무라는 견해마저 또한 반드시 버려야 한다. 그 사람이 물었
다 : 만약 이 무라는 견해마저 또한 버린다면 제 심중의 온갖 것
은 무소득이 됩니다. 그렇다면 그것이야말로 어찌 단공에 빠지
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때 내가 그한테 ‘오공이여.’ 라고 부르자,
그가 ‘예.’ 하고 답했다. 이에 내가 말했다 : 그것이 어찌 단공이겠
는가. 그러자 그 사람이 말했다 : 정말 훌륭하십니다. 참으로 많
2)
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오늘에야 비로소 해공解空을 이해하여
단견의 뜻에 빠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통쾌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는 재삼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물러갔다.”
2) ‘내가 그대의 이름을 부르니까 그대가 답변하였는데, 그것이 어찌 단공이란 말인가.’라는 뜻으로, 부르
는 사람이 있고 답변하는 사람이 있는 까닭에 단공이 아님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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