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0 - 고경 - 2021년 1월호 Vol. 93
P. 70
사진 7. 봉정사 ‘만세루’ 편액. 사진 8. 봉정사 ‘덕휘루’ 편액.
수행과 교화를 모두 고려해 위치를 잡다보니 생활이 가능하면서도 경치가
좋은 곳에 자리를 잡게 되고, 점차 사찰을 왕래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길이 생기게 된 것이다.
나중에 이 길을 따라 유자들이 들어왔는데, 산과 골의 이름이 불교식인
것에도 불만을 가질 만큼 불교에 대해서는 남다른 반감이 있었다. 수행자
집단인 사찰을 존중하는 이들도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
았기에 문루에 올라 데리고 온 기생을 끼고 술을 마시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으며, 사찰 앞에 펼쳐지는 절경에 마냥 즐거웠을 것이다.
스님들도 백성이라 어찌 할 수는 없었을 것이고, 사찰을 없애자니 다음에
놀러 왔을 때 아쉬울 까봐 그런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좋은 위치에 지어진 훌륭한 누樓의 이름이 거슬리지 않았을까? 그래서 사
찰의 이름은 바꿀 수는 없어도 적어도 이 훌륭한 뷰포인트의 이름만큼은 그
들이 추구하는 가치대로 이름을 바꾸고 싶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글픈 것은, 절에 사는 사람들은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떠나며 남
긴 글자를 다음에 올지도 몰라 새겨 걸 수밖에 없는 참담함에 마지못해 시
판 등을 건 것은 아닐까(사진 7·8)? 이렇게 문루의 이름이 상반되는 두 개
로 불리는 연유에 대해 불가나 유가나 어디에도 설명 해주는 기록이 남아
있지는 않다. 아마도 한 쪽은 너무 당연해서, 다른 한 쪽은 굳이 밝히고
싶지 않아서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