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0 - 고경 - 2021년 3월호 Vol.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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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편찬자인 개국공신들의 주관이 개입되었다 하여 비판받았고, 태종이
          즉위한 이후 조선 건국 과정에 대한 기록이 부실하다는 문제점이 제기되

          었다. 이후 1414년(태종 14), 1419년(세종 원년), 1423년(세종 5), 1438년(세종 20)
          에서 1442년(세종 24) 사이, 1446년(세종 28)의 시간을 지나면서 여러 차례 고

          치고 보충하여 편찬된 것이다. 이로써 조선이 전왕조사前王朝史를 정리하려
          는 노력은 『고려국사』 편찬으로부터 시작해 57년 만에 『고려사』로 마무리되
          었다. 조선 초기의 어수선한 정치와 권력의 속사정 때문으로 해석된다.

           『고려사』 편찬자들의 고려시대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각은 초기에는 당

          나라의 정치·군사·토지 제도를 받아들여 발전된 국가체제를 성립시켰으
          나, 무신정권으로 국가제도가 무너짐으로써 고려사회는 파탄에 이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신정권의 폐단은 고려 멸망의 원인으로 인식되었다. 즉

          고려 전기를 긍정적으로 보고, 후기를 부정적으로 기술한 것은 조선왕조

          의 건국이 정당한 것이었으며, 문文을 숭상하는 숭문주의崇文主義에 따른
          무신에 대한 부정과 지나친 비판의 여지도 있었다. 또한 불교가 고려 멸망
          의 또 다른 원인으로 인식하였다. 왕과 왕실, 그리고 지배층의 지나친 불

          교숭배가 나라를 몰락의 길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빈번한 국가적 불교행사

          개최와 대규모 사찰 건립 등은 나라의 경제를 낭비하게 된 원인이 되었고,
          스님들의 사치와 막행막식莫行莫食은 불교사상과 신앙의 발전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 피지배층의 불만이 노골화되는 계

          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고려사』는 비록 조선 건국 합리화라는 정치적 목적과 아울러 이전 왕조
          인 고려의 무신정권기-우왕·창왕기까지의 폐정弊政을 잘못함이 없도록
          타일러 주의시켜 권계勸戒하고 교훈을 찾고자 하는 목적으로 편찬되었지

          만, 사료史料 선택의 엄정성과 객관적인 서술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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