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2 - 고경 - 2021년 3월호 Vol.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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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못하리라.’고 하였다. 내가 생각하건대 후세의 국왕이나 공후公
侯·후비后妃·조신朝臣이 각각 원당願堂이라 일컬으며 혹시 더 만들
까봐 크게 근심스럽다. 신라新羅 말에 다투어 사원[浮屠]을 짓다가
지덕이 쇠하고 손상되어 결국 망하는 데 이르렀으니 경계하지 않
을 수 있겠는가?…여섯째, 내가 지극하게 바라는 것은 연등회燃燈
會와 팔관회八關會에 있으니, 연등회는 부처를 섬기는 까닭이고, 팔
관회는 하늘의 신령 및 오악五嶽·명산名山·대천大川·용신龍神을 섬
기는 까닭이다. 후세에 간신들이 이 행사를 더하거나 줄일 것을 건
의하는 것을 결단코 마땅히 금지하라. 나도 처음 마음으로 맹세하
기를, 연등회·팔관회를 하는 날짜가 국가의 기일[國忌]을 범하지 않
게 하고 임금과 신하가 함께 즐기겠다고 하였으니 마땅히 조심스럽
게 이대로 시행하라.
(『고려사』 권2, 세가世家 2 태조 26년 4월조, 『훈요訓要」 중에서)
인용문은 943년 여름 4월 왕이 내전內殿에 나아가 대광大匡 박술희朴述
希를 불러 친히 내린 「훈요訓要」(사진 2)의 일부분이다. 고려의 건국과 운영,
그리고 정신문화가 불교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고려시대 불교사정을 알려주는 대부분의 기록이 고승의 문집이
나 금석문, 그리고 고문서류 등에 한정되어 있지만, 『고려사』의 불교기록은
고려불교의 정체성과 국가불교의 면모를 구체적으로 살필 수 있다. 팔관회
는 서경西京에서 10월에, 개경開京에서는 11월15일에 행해졌는데, 태조 대
부터 시작되었으나 의례적으로 정비된 것은 정종(靖宗, 재위 1034-1046) 대였
다. 연등회 역시 부처를 섬기는 의례라 하고, 후세에 이 행사를 자의적으
로 늘리거나 줄이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정월 보름에 실행하거나 2월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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