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1 - 고경 - 2021년 3월호 Vol.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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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志는 편찬자들의 역사인식의
한계성으로 인해 고려의 정치제
도와 풍속 등의 기술에서 잘못
을 저질렀다. 지志는 예·악·천
문·오행·식화·형법·지리·관직
사진 1. 『고려사』.
등의 통치제도와 문물·경제·자
연현상을 내용별로 분류하여 기록한 것이다. 특히 열전列傳은 은일전隱逸
傳과 석로전釋老傳을 설정하지 않았다. 이에 대한 자료가 없는 것이 아닌데
도 이를 설정하지 않은 것은 역사를 찬술하는 일군의 젊은 학자들의 인생
관·종교관의 편협성과 조선왕조가 성리학性理學을 통치이념으로 하는 유
교 국가였다는 점에 기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즉, 도교와 불교에 관련된
인물들을 의도적으로 수록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고려시대의 불교를 바
탕으로 한 종교와 종교문화가 지닌 특성, 그리고 많은 문화 내용을 전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첫째, 우리나라의 대업大業은 반드시 모든 부처가 보호하고 지켜주
는 힘에 의지하고 있으므로, 선종禪宗과 교종敎宗의 사원寺院을 창
건하고 주지住持를 파견하여 분향焚香하고 수도修道하게 함으로써
각각 자신의 직책을 다하도록 하는 것이다. 후세에 간신姦臣이 정
권을 잡고 승려의 청탁[請謁]을 받아 각자의 사사寺社를 경영하며
서로 싸우며 바꾸고 빼앗는 일을 결단코 마땅히 금지해야 한다. 둘
째, 여러 사원은 모두 도선道詵이 산수山水의 순역順逆을 미루어 점
쳐서 개창한 것으로, 도선이 이르기를, ‘내가 점을 쳐 정한 곳 외에
함부로 덧붙여 창건하면 지덕地德이 줄어들고 엷어져 조업祚業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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