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3 - 고경 - 2021년 5월호 Vol.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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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많지만, 그 이후의 변화와 연관 지어 판단을 해 보아야 천왕문이 언제
처음 지어졌는지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이후 우리나라에서 보편화된 사
천왕이 라마계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시작 시기를 가늠하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정문正門의 역설
정문의 사전적 의미는 주主출입문을 말한다. 사찰에도 정문이 있는데
늘어선 산문 중에 무엇이 정문일까? 당연히 맨 앞의 일주문을 정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와는 정반대로 가장 안쪽의 문이다.
이는 수륙재가 의식 중에 무주고혼無主孤魂을 천도하는 의식이 강조되면
서 생긴 현상이다. 수륙재는 상·중·하의 삼단을 갖추고 하단에서 무주고
혼을 모아 상단으로 나아가 설법을 듣고 해탈하는 구조이다. 이때 절 밖이
라고 설정되는 하단은 주로 문루에 차려지기 때문에 사찰로 들어가 부처
님 앞에 나서는 설정을 위해서는 하단과 상단 사이에 정문이 필요하게 된
다. 그래서 정문이 사찰의 안마당에 세워지는데 봉정사 진여문, 송광사 법
왕문, 흥국사 법왕문 등이 그 사례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산문 시스템은 유독 발달하였다. 산문의 역학은 필
터링도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유인 또는 환영하는 역할도 하며, 의식을 행
하는 과정에서는 현실의 산문을 압축하여 정문 하나로 표현하는 놀라운
상징성도 가지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렇게 변화무쌍한 산문 시스템
은 불교의 우월적 지위를 박탈당한 시대에 일어났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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