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8 - 고경 - 2021년 6월호 Vol.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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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나타난다. 같은 홍인의 제자인 신수(神秀, 605-706)의 저술에는 『최상
          승론』을 인용하지만, 『금강경』에 대한 언급이나 사상적 흔적은 보이지 않는
          다. 그렇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육조단경』이나 하택신회荷澤神會의 어록

          에서는 있지도 않은 스승의 교계敎誡를 날조한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최상승론』의 서문의 역할을 하는 시작부분에
          서 혜정의 『반야바라밀다심경소』의 끝부분을 그대로 인용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바로 혜정의 사상을 존중하거나 계승한다는 의도

          로 보아야 할 것이다. 신수의 저술에 『최상승론』의 문구를 인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신수가 홍인 문하에 있을 때 이미 출현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자료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도신 선사가 입적한 영휘 2년(651)
          에 신수는 46세의 나이로 홍인 문하에 들어와서 52세(656)에 홍인선사로부

          터 인가를 받은 이후에 홍인 문하를 떠난 것으로 추정되며, 혜능은 22세

          (660)에 홍인 문하에 들어온 것으로 확인된다. 따라서 홍인 선사가 혜능에
          게 『금강경』을 가르쳤다면, 신수가 문하를 떠난 이후의 일이고, 그 매개가
          된 것은 혜정이 찬술한 『금강반야경주』라고 추정할 수 있다. 『반야바라밀

          다심경소』의 마지막 구절을 서문과 같이 인용한 홍인이 『금강반야경주』 역

          시 보았을 가능성이 크며, 또한 그를 통해 자연스럽게 『금강경』으로 관심이
          집중되었을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최상승론』에는 『금강경』의 사상
          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하겠다. 따라서 홍인이 신수에게는 도신 선사로부터

          계승한 『문수설반야경』에 입각한 ‘오문선요’의 선사상을 가르쳤지만, 이후

          에 입문한 혜능에게는 『금강경』을 가르쳤다고 하겠다. 이는 필자의 추론일
          뿐이지만, 여러 정황상 가능한 일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홍인의 선사상은 여전히 『최상승론』을 통해서 고찰해야 할 것이

          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홍인은 ‘수심’을 법요로 제창하였는데, 『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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