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0 - 고경 - 2021년 6월호 Vol.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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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이 운집하였으며, 또한 이후 홍인 문하에 700여 대중이 있었다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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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러한 대규모의 대중을 형성한 것은 선종사에 있어서 최초의 일이
라고 하겠다. 이렇게 대중을 형성함에 따라 학인들에 대한 교육방법과 많
은 대중들의 의식주 해결도 문제가 되었을 것이고, 다양한 생활규범이 필
요했을 것이라고 하겠다.
동산법문에서는 대중교육을 실행한 흔적이 보인다. 도신은 학인들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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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으로 구분하여 그에 적합한 교육을 실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두 번
째, 대중들의 의식주, 즉 경제적 문제를 동산법문에서는 대중들의 노동으
로 생산에 참여하는 것으로 해결하고 있다. 본래 불교에서는 출가 승려들
의 노동을 계율로 금하고 있으며, 경제적 문제는 신도들의 재시財施로 해
결하고 있다. 그런데 동산법문에서는 모든 대중들이 노동에 참여하여 생
산하는 독특한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후대에 선종이 중국불교의 주류
를 형성하여 크게 이상할 것이 없지만, 당시에 승려가 직접 노동을 하
여 생산에 참여하는 것은 계율에 어긋나는 파격적인 일이라고 하겠다.
이는 당시의 시대상황에 따른 일이기도 하지만, 신도들의 재시에 의지
하지 않고 대자유를 얻고자 하는 도신 선사의 사상에 따른 것으로 해
석할 수도 있다. 이는 또한 현재 중국불교의 주류인 ‘생활선生活禪’의 선
범先範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낮에는 노동에 참여하고, 밤에는 수선修禪하
는 생활양식으로부터 새로운 생활규범이 필요하였을 것이므로 다양한 규
구規矩가 출현했고, 후대에 백장百丈 선사가 이를 정리하여 ‘청규淸規’로 규
10) [唐]道宣, 『續高僧傳』卷20(大正藏50, 606b) “于時山中五百餘人, 並諸州道俗.”
11) [宋]道原, 『景德傳燈錄』卷3(大正藏51, 222c) “時會下七百餘僧.”
12) [唐]淨覺, 『楞伽師資記』(大正藏85, 1287c) “知學者有四種人, 有行有解有證, 上上人; 無行有解有證, 中上
人; 有行有解無證, 中下人; 有行無解無證, 下下人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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