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1 - 고경 - 2021년 6월호 Vol.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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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주소는 한용운과 같음)이다. 3호에는 인쇄인이 심우택으로, 인쇄소는 성
             문사로 교체되었다. 정가는 한 권이 18전. 『유심』을 배포하는 서점[分賣所]
             은 경성 종로의 광익서관, 동양서원, 운니동의 장문사서점, 황금정의 신문

             관이다.(1호의 안내문)

               신문관은 1908년 최남선이 세운 인쇄소 겸 출판사로 각종 계몽잡지와 교
             양서적을 출판하여 이 땅의 근대문화를 선도하였다. 아울러 같은 건물에
             있는 조선광문회는 한국문화를 대표하는 각종 고전을 출판한 근대지성의

             집합체로, 이 역시 최남선이 주도하여 결성하였다. 한용운이 『유심』지를 신

             문관에서 인쇄, 제작하였고, 『유심』에 스님들뿐 아니라 조선광문회 인사들
             이 다수 투고한 사실은, 기본적으로 최남선, 조선광문회가 『유심』지의 외
             연을 형성하는 지적 인프라임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유심』지 이전에 등장한 불교잡지는 모두 불교계의 구심이 되었던 종단

             의 기관지 성격을 지니고 있다. 원종종무원(『원종』 『조선불교월보』), 조선선교
             양종 각본사 주지 회의원(『조선불교월보』), 조선 선교양종 삼십본산 주지회의
             소(『해동불보』), 불교진흥회(『불교진흥회월보』 『조선불교계』), 삼십본산연합사무소

             (『조선불교총보』) 등에서 주관한 잡지로서 교계 소식 전달이 기본적 목적이었

             으며, 총독부 종교 정책을 전달하는 체제 내의 잡지였다.
               『유심』은 앞에 소개한 불교잡지와 그 출발이 다르기 때문에 일제 치하의
             종교 제도와 정책을 홍보하거나 교계의 활동과 사찰 단위 행정 처리 등 공

             적인 내용을 전혀 담아내지 않았다. 『유심』이 불교잡지임은 분명하나, 내용

             상 불교의 홍법만을 강조하지 않았다. 또 함께 활동한 임제종 스님들 외에
             도 민족주의 계열 다수의 지식인을 필진으로 초대하였다.
               『유심』은 만해의 불교 사상과 실천 의지가 기본적인 동력이 되어 청년을

             호명하고 그들의 심성을 개량함으로써 대중을 교화하는 보살행을 실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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