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5 - 고경 - 2021년 8월호 Vol.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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衆芳搖落獨暄姸   뭇 꽃들이 시들어진 때에 홀로 선연히 피어나
                  占盡風情向小園   작은 정원의 풍경과 정취를 모두 차지하였네.
                  疏影橫斜水淸淺    성긴 매화가지 사이로 꽃 그림자 물위에 비스듬

                                 히 비추며

                  暗香浮動月黃昏    달빛 으슴푸레한 저녁 하늘에 그윽한 향기 날려
                                 보내네.
                  霜禽欲下先偸眼   백학은 가지에 앉을 때 꽃을 먼저 훔쳐보고

                  粉蝶如知合斷魂   나비도 매화를 알고는 넋을 잃고 마는데

                  幸有微吟可相狎    나는 복도 많아 가만히 노래하며 서로 희롱할
                                 수 있으니
                  不須檀板共金樽   악기와 술이 없다 해도 아무 상관없도다.



               이 시로 인하여 매화향기를 ‘암향暗香’이라고 하는 말도 생겨나고, 매화는
             산림처사의 상징적인 꽃으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어느 해인가 항주에 간 김
             에 그의 시를 상상하며 서호의 둘레 길을 따라 걸어봤지만, 관광객만 넘칠

             뿐 고아한 임포 선생이 살다간 삶의 향기는 느끼기 어려워 다음 날 새벽 인

             적이 드문 시간에 혼자 호숫가를 천천히 걸어본 적이 있다.
               매화를 정말 사랑한 사람은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 선생이다. 그의
             높고 깊은 학문은 말하지 않더라도 세속에서 벗어나 산림처사로 매화와 함

             께하며 인간 완성의 길을 걸어간 사람이 퇴계선생이다. 퇴계선생은 생전에

             매화를 읊은 시만 무려 107수를 남겼고, 임종 시에도 서울에 두고 온 매화
             가 생각이 나서 매화 화분에 물을 주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겼다.
               아무튼 봄날에 섬진강변을 따라 매화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길을 걸으며

             달까지 강에 비치고 매화향기가 은은히 물안개 위로 퍼지는 초저녁 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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