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9 - 고경 - 2021년 8월호 Vol.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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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만든 온돌방 구조이다(사진 3). 여기서는 장좌불와長坐不臥, 일일일식一日
一食, 묵언默言의 세 규칙을 철칙으로 삼았다. 한 번 불을 지피면 여러 날 온
기가 유지되는 특별한 기법으로 지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아자방의 구조가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된 것이라면, 효공왕 당시에 좌선수행을 했다는 것이
다. 당시에는 화두 참선법이 없었기 때문에 수행자들은 경전을 공부하고 아
자방에서는 벽을 보고 앉아 묵언 참선수행을 하였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이
에 관해서도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보인다.
아자방은 동국 제일 도량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문수 동자의 화현 설화
등 많은 설화와 함께 그 이후 이곳에서 뛰어난 수행자들이 무수히 나왔다
고 한다. 고려 시대의 청명淸明 대선사와 조선시대 중종 때의 추월秋月 조
능祖能(1506-1544) 선사 등이 대표적이다. 조능 선사는 벽송壁松 지엄智嚴
(1454-1534) 조사의 제자인데, 평생을 눕지 않고 밤중에는 돌을 짊어지고 인
근 쌍계사에 가서 육조六祖 정상頂上 탑에 참배하고 돌아오는 힘든 수행을
하여 결국 조사관祖師關을 뚫었다고 한다.
1534년 즉 중종 29년에는 서산西山 휴정休靜(1520-1604) 대사가 칠불암에
와 대웅전의 기와를 다시 잇고 낙성식을 하였으며, 광해군(1608-1622) 시절에
는 서산 대사의 제자인 부휴浮休 선수善修(1543-1615) 대사가 오랫동안 이 절
에 머물며 수행하고 당우를 보수하다가 73세로 입적했다. 칠불사 대웅전에
서 뒤쪽 언덕길을 따라 선방으로 조금 올라가다 보면 부휴 대사의 부도가
있다(사진 4). 부휴 대사는 부용 영관 선사의 제자이지만 나이로는 사명당四
溟堂 유정惟政(1544-1610) 대사와 비슷하여 두 대사 사이에 많은 소통이 있었
고, 임진왜란에도 사명대사의 천거로 승장僧將이 되어 싸웠다. 많은 제자들
을 배출하고는 72세에 송광사에서 칠불암으로 와 주석하다가 곧 입적하였
다. 문도들은 스승을 화장하여 영골靈骨을 해인사, 송광사, 칠불사, 백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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