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8 - 고경 - 2021년 8월호 Vol.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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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에 정착하여 불철주
                                                   야로 정진하여 모두 성불
                                                   하였다. 이들이 수행 정진

                                                   하는 동안 수로왕과 허 황

                                                   후는 아들들이 보고 싶어
                                                   칠불사에  찾아와  만나기
                                                   를 청했으나 속세와 인연
          사진 6. 조능 선사 판석 부도.
                                                   을 끊은 아들들은 부모를

          만나지 않고 다만 절 앞의 연못에 그림자를 비추어주었다고 하여 그 연못
          이 지금도 영지影池로 전해오고 있다(사진 2).
           당시 김수로왕이 머물었던 마을은 범왕촌梵王村으로 불리어 오늘날 범왕

          리凡王里라는 명칭으로 남아 있고 허 황후가 머문 곳은 대비촌大妃村이라고

          하여 현재 대비리大比里라는 마을 이름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수
          로왕은 60년 동안 나라를 다스려 태평성세를 이루었으며, 힘을 기울여 이
          곳에 대가람을 창건하고 불법을 크게 흥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당시 중국에

          아직 불교가 전해지기도 전이고, 더구나 한반도에는 불교가 전파되기 전이

          라, 이러한 설화가 사실이라면 한반도로 불교가 전해진 때와 그때 말하는
          불교의 내용은 무엇인지 흥미롭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관한 연구는
          전문연구자들의 연구 성과를 기다려봄이 좋을 것 같다.

           신라 효공왕孝恭王(897-912) 대에 이르러서는 현재 김해 지역을 말하는 금

          관 지역 출신의 담공曇空 선사가 이 절에 와서 벽안당碧眼堂이라는 선실을
          아자형의 2중 온돌방으로 축조하였으니, 이것이 유명한 아자방亞字房이다.
          아자방은 방 내부구조를 한자의 ‘아亞’자 모양으로 만들어 양 벽면으로는 앉

          아서 좌선坐禪을 하는 자리로 만들고 가운데는 내려와 행선行禪을 할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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