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0 - 고경 - 2021년 9월호 Vol.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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域 역할을 하던 금당영역 대
신 진감비가 있는 곳에 대웅
전을 새로 세우며 이곳을 새
로운 중심사역으로 만든 것
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사진 3. 쌍계사에서 조성된 최치원 영정(오른쪽 - X선 촬영 이미지).
새로운 중심사역에는 최치원
의 영당도 세워졌는데, 현존하는 최치원 영정은 이후에 재차 조성된 것으
로, 화기畵記에 따르면 1793년 쌍계사에서 조성된 것이다. 이 영정은 1825년
화개의 금천사琴川祠로 옮겨졌다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에 의해 하
동향교로 옮겨졌고, 최치원 후손들이 세운 운암영당에 옮겨지게 되며 오늘
에 이르렀다.
최근 영정에 대한 X선 조사를 통해 최치원 좌우에 원래 동자가 있었다
는 점이 확인되었다. 사찰에 봉안하는 영정이라 동자가 최치원을 시봉하
는 장면을 그려 넣었으나, 쌍계사 밖으로 옮겨지며 동자를 덧칠하여 가린
것으로 보인다.
같은 듯 다른 단속사
단속사의 창건은 8세기 중반 경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선禪이 본격적으
로 수용되기 시작한 9세기 중반보다 앞서 신행(704-779)과 그의 스승이 북
중국에서 유행하던 선을 들여왔고, 이중 신행이 머물며 수행한 곳이 바로
단속사이다. 이후 본격적으로 들어온 선은 6조 혜능을 중심으로 하는 남
중국의 선이었으며, 이것이 신라에 주류를 이루게 되면서 단속사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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