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3 - 고경 - 2021년 12월호 Vol.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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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나타난 모습이고, 이에 따라 우리가 설정한 개념이고, 우리가 붙인 이
             름이기 때문이다.



             대립하는 상相 이전의 무아無我     좌표축의 설정과 관련하여 음양을

             살펴봤지만, 음양뿐 아니라 현상으로 나타나는 상相은 모두 이렇다. 일수
             사견一水四見이라고 했다. 같은 물이라도 천상의 사람에게는 보석으로 보
             이고, 사람에게는 마시는 물로 보이며, 물고기에게는 사는 집으로 보이고,

             아귀에게는 피고름으로 보인다고 한다. 어떤 인연이 성립하느냐에 따라 서

             로 다른 상相이 나타나는 것은 물 자체가 변하지 않는 결정적 본질(essence)
             이 없기 때문이다. 무자성無自性이고 무아無我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말똥을 더럽다고 하고, 바닷물을 짜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말똥

             이 더러운 상相으로 나타나고, 바닷물이 짠 상相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똥구리에게 물어보면, 이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것이 말똥이
             라고 할 것이다. 그에게는 말똥이 집이고 밥이다. 고등어에게 물어보면 바
             닷물이 짜지 않다고 할 것이다. 오히려 짠 게 무어냐고 되물을 것이다. 말

             똥구리가 더럽지 않다고 하는 것은 말똥이 본래 더럽지 않기 때문이고, 고

             등어가 짜지 않다고 하는 것은 바닷물이 본래 짜지 않기 때문이다. 더러운
             것으로 나타나도 본래 더러운 것이 아니고, 짠 것으로 나타나도 본래 짠 것
             이 아니다. 무자성無自性이고 무아無我이다.

               물은 중생에 따라 보석으로 나타나고 마시는 것으로 나타나고 사는 집

             으로 나타나고 피고름으로 나타나지만, 본래 보석도 아니고 마시는 것도
             아니고 사는 집도 아니고 피고름도 아니다. 말똥을 더럽다고 하지만 본래
             더러운 것은 아니다. 불구부정不垢不淨이다. 바닷물을 짜다고 하지만 본래

             짠 것이 아니다. 그럼 무엇인가? 단지 연기緣起에 의해 이러저러하게 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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