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8 - 고경 - 2021년 12월호 Vol.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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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자명하다. 여기서 대수번뇌심소의 마지막 심소인 ‘산란散亂(vikṣepa)’이
나온다. 산란은 마음[심왕]으로 하여금 온갖 대상을 쫓아가게 만들고, 마음
이 고요히 안주하는 것을 깨뜨리므로 바른 선정[正定]을 방해하고, 결과적
으로 ‘나쁜 지혜[惡慧]’를 자라게 하는 심소이다.
『성유식론』에 따르면 산란이란 “모든 인식대상에 대하여[於諸所緣] 마음
을 방탕하게 흐르게 하는 것이 본성이다[令心流蕩爲性]. 능히 바른 선정을 방
해하여[能障正定] 나쁜 지혜의 의지처가 되는 것이 작용이다[惡慧所依爲業].”
라고 했다.
첫째, 산란의 본성은 마음을 방탕하게 흐르게 하는 것이다. 마음이 차분
하게 안정되지 못하면 보고 듣는 인식대상에 자극받게 되고 결과적으로 대
상을 따라 마음이 흩어지게 마련이다.
둘째, 산란의 작용은 바른 선정[正定]을 방해하여 나쁜 지혜[惡慧]를 자라
나게 하는 것이다. 마음이 굳건하지 못하면 이런저런 대상에 휘둘려 산란
해지고, 자연히 선정은 깨지고 그로부터 나쁜 지혜는 자꾸 늘어나게 된다.
이상의 내용을 요약하면 실념은 정신 줄을 놓고 기억해야 할 바를 놓치
는 것이고, 부정지는 대상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왜곡된 정보를 받아
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정신 줄을 놓고 왜곡된 정보를 받아들이면 마음은
산란해지고 번뇌로 들끓게 된다. 하늘을 나는 연에는 연줄을 매달고 날뛰
는 송아지에게는 고삐를 묶어야 하듯이, 번뇌로 산만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정신 줄을 꼭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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